2020년 회고.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의 연속
우리 회고하기 딱 좋은 사이
무과수는 2018년 여름, 오늘의집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됐다. 결혼으로 인해 독립하고 신혼집 꾸미는 재미에 한참 빠져있을 무렵, 내 취향으로 꾸며진 집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오늘의집 콘텐츠 매니저였던 무과수와 나는 서면으로 인터뷰를 주고 받으면서 서로에 대해 어렴풋하게 알게 됐고 강남에 있는,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여러 공통점으로 서서히 가까워졌다.
진영언니는 올해 초 처음 만났다. 우린 공통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많아 서로를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는데, 특별한 계기가 없어 통성명은 하지 않은채 서로의 게시물에 ‘좋아요’만 누르던 사이였다. 어느날 동방예의지국에서 태어나 교사의 자녀로 30년을 살아온 나는 통성명없이 끝없이 울리는 스토리 ‘좋아요’ 알림에 더 이상 ‘좋아요’로 답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갑작스럽게 언니에게 나를 소개했다. 덕분에 우린 조금 가까워졌다. 며칠 뒤, 무과수와 함께 우리집에 놀러 올 정도로… 그렇게 우리 셋은 함께 아는 사이가 되었다. (K스타일의 빠른 전개)
올해 예상치 못하게 연결된 인연은 이어져 연말에는 경주에서 함께 2020년을 돌아보는 시간도 함께 가졌다.
조각들을 이어붙이는 방식의 회고 #프로젝트 리콜렉트
회고는 진영언니가 준비한 프로그램(프로젝트 리콜렉트)으로 진행했는데, 집중하며 참여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언니가 준비한 노트와 스티커들 중 맘에 드는 노트와 3가지 색의 스티커를 골랐다. 그리고 2020년을 recollect, 다시 불러왔다. 불러온 방법은 episode, record, content로 앞에서 정한 3가지 색의 스티커에 각각 2020년의 조각들을 작성했다.
작성하면서 이게 맞나? 너무 겹치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언니를 믿고 작성해나갔다. 점점 적을 수록 나름의 규칙이 생기고, 카테고리별로 스티커를 구분해서 기록할 수 있었다.
힘들었지만 나쁘진 않았던 2020년
작성한 스티커들 중 비슷한 것들끼리 모아 붙이고 연결하다보니 큰 흐름이 한 페이지에 완성됐다. 코로나 19로 전세계가 힘들었고 개인적으로는 이사, 퇴사, 이직 등 큰 사건들이 많았던 2020년. 하나하나는 힘든 일이었지만, 결코 나쁘지 않은 한 해였다.
스티커로 모인 2020년 조각들을 바탕으로, 올해 가장 강렬했던 일, 좋았던 일, 아쉬운 일들을 함께 이야기했다. 다른 이의 회고가 나의 계획이 되기도 했다. (이 책은 나도 내년에 읽어봐야지, 이건 나도 계획으로 해봐야겠다 등)
다음은 스티커를 붙이며 발견하게 된 나의 2020년 정리.
1. 인생 최대 소비, 영끌 30대 동참
10년 만에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회사와 한강이 가까워졌다. 남편과 나는 저녁을 함께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저녁을 먹은 뒤에는 한강을 달릴 수도 있었다.
집을 사겠다고 했을 당시에는 부모님도, 주변에서도 무리하는게 아닌지 걱정이 많았다. 무리한게 맞다. 하지만 좋은 타이밍에 잘한 결정이었다. 어차피 할 일이라면 결정을 미루지 않는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평대 아파트 인테리어 블로그 후기)
2. 코로나 19와 퇴사, 새로운 인연
코로나 19로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올해도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이는 꼭 코로나 때문이라기 보다는 나의 퇴사 이유도 있어서 복합적이지만, 그래도 코로나 19라는 키워드를 시작으로 올해 인연이 생긴 사람들, 고마웠던 사람들을 다시 떠올려보게 됐다.
밖에 나가기 어려워서 그리고 집들이 겸 사람들을 집으로 많이 초대했는데, 그게 마음의 거리를 확 좁혀주기도 했다. 더불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 드라마나, 영화, 책도 많이 읽은 한 해였다. 퇴사 후라 업무적 성장을 위한게 아닌 콘텐츠 소비가 늘어난 것도 재밌었다.
3. 첫 회사의 끝, 끝에서 이어지는 기회
2012년 2월부터 2020년 3월까지. 만 8년을 딱 채우고 퇴사했다. 오래다닌 회사에서 벗어나 여러 사람들의 제안으로 재밌는 활동들을 많이 했다. 프리랜서로 일도 해봤고, 그로스 해킹 컨퍼런스, 노션 웨비나에 연사로 참여해보기도 했으며 스타트업 테드 유튜브에 출연하기도 했다.
2020년 퇴사 이후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적다보니 옆에서 등 떠밀어준 고마운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로스 해킹 컨퍼런스 연사 제안을 받고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라고 했을때, 스타트업에서 8년 다녔으면 할 말이 없을 수가 없다고 같이 해보자고 했던 주혜나 늘 덤덤하게 날 좋아해주고 추천해주는 우희 등 주변의 좋은 동생들이 많이 생각났다. 아, 비슷한 시기에 퇴사해서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숭도.
4. 최선을 다했던 순간, 반짝반짝 빛났던 여름
올해 여름은 잊기 어렵다. 퇴사 동기 미혜와 함께 했던 ‘멋쟁이 사자처럼’ 직장인 프로그램 때문. 최선을 다한 것뿐만 아니라 성과가 있어서 좋았다. 새로운 회사에 입사하기 전, 나에겐 작은 성공 경험이 필요했다. 덕분에 8월 마무리를 잘하고 스티비로 이직할 수 있었다.(멋쟁이 사자처럼 직장인 4기- 1등 회고)
5. 어차피 멀리서 보면 상승곡선
중간중간 좋지 않은 일들이 적힌 스티커도 있었다. 잘 지내던 관계들이 많이 깨진 해이기도 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있고 사람도 있다. 다시 돌이켜 생각해봐도 그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깨진 관계를 이해하려고 꽤 오랫동안 원인을 찾았던게 아쉽다. (그무렵 만난 친구가 이야기했던, ‘나는 네가 그만 생각했으면 좋겠어. 시간이 많이 흘렀어'라는 이야기 덕분에 벗어날 수 있었다.)
재밌는건 힘들었던 사건을 기록한 스티커들의 끝에는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했던 스티커들이 붙어있었다. 책을 보기도 했고 재밌는 드라마를 찾기도 했다. 올해 나와 남편에게 좋은 영향을 줬던 달리기도 그 끝에 있다.
다시 같은 상황이 온다고 해도 나는 아프고 힘들겠지만, 그래도 멀리서 보면 상승곡선이라는 레슨런은 다음의 내가 어려움을 이겨낼 힘을 주겠지. 문득 3년동안 일기를 썼을 때가 생각났다. 역시 과거의 나를 기록해두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 힘이 된다.
내년에도 우린 다시 모일까?
올해를 돌이켜 보는 이유는 앞으로의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함이므로 내년을 위한 계획과 다짐을 공유하고 회고를 마쳤다. 매번 회고는 혼자 블로그에 키워드들을 정리하거나 회사에서 업무적인 회고를 했는데, 이렇게 회고 만을 목적으로 다른 장소에 가서 함께 해보는 경험이 특별했다.
적당히 비슷하면서 다른 셋의 조합도 좋았다. 회고는 같은 사람들이 계속 하면 좋다며(어떤 목표로 올해를 살았는지 이미 알고 있으므로), 내년에도 함께 모이자는 말에 언니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한 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우린 내년에도 다시 모이게 될까? 2020년의 조각들이 붙어있는 페이지에 지금은 연락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름들이 눈에 밟혔다.
그래도 내년에도 함께 하자고 나도 말했다. 말로 꺼낸 생각은 실현될 확률이 올라가니까. 물론 그건 그 때가 되어야 알게 되겠지만, 모든 일이 그렇지. 2021년의 회고가 기대된다.